요프 판넬런
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이름
요하너스 코르넬리스 "요프" 판넬런
(Johannes Cornelis "Joop" van Nellen)
생년월일
사망년월일
국적
출신지
포지션
레프트 아웃사이드 포워드
신체조건
불명
등번호
소속팀
DHC (1926-1938)
국가대표
27경기 / 7골 (1928-1937)



목차
1. 생애
1.1. 선수 생활1.2. 은퇴 후
2. 플레이 스타일 & 평가

1. 생애[2] [편집]

1.1. 선수 생활 [편집]

1.1.1. 클럽 [편집]

판넬런은 고향 델프트를 연고로 하는 DHC(Delfia Hollandia Combinatie)에서 모든 커리어를 보낸 원 클럽 플레이어이다. 그는 1922년부터 DHC의 유스로 있었고 1926년부터 1군에서 뛰었다. 1932년에 팀이 1부 리그 승격을 이루었다.

1.1.2. 국가대표팀 [편집]

판넬런은 1928년, 18살의 나이에 산 시로 원정 경기에서 레오 할러, 베프 바크하위스와 더불어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. 그 당시에도 별 볼일 없던 DHC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였다.

하지만 판넬런은 1929년 3월, 스위스와 치른 자신의 2번째 A매치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1년간 대표팀에서 강제 휴식을 갖게 되었다.

판넬런은 9년의 대표팀 생활에서 총 27경기에 출전했으며 7골을 넣었다. 그는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도 주전 레프트 아웃사이드 포워드로 출전했지만 네덜란드가 스위스에 패하며 단 한 경기만에 월드컵 여정이 끝나고 말았다.

1.2. 은퇴 후 [편집]

은퇴 후에는 축구 코치로 활동했고 친정팀 DHC의 이사회에서도 있었다.

2. 플레이 스타일 & 평가 [편집]

빠르고 좋은 슈팅 능력을 가진 아웃사이드 포워드. 항상 불만 없이 그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선수였다.

지금은 아마추어 클럽이 된 DHC의 첫 국가대표 발탁 선수, 그것도 월드컵까지 뛸 정도로 대표팀의 레귤러 멤버였으니 당연히 DHC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.

[1]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.[2] 출처: 위키피디아, 11v11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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